매일의 감사

<성경공부> 말라기 1장 강해

love123 2020. 12. 5. 07:19

저자 : 말라기
주전 430년경 대언의 말씀
스룹바벨 이후,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번영과 부흥을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말라기 뜻 여호와의 사신

1.

말1: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말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말1: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말1: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말1: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말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말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말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말1: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말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말1: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말1: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말1: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1:14 짐승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라기 1장 강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성경으로서, 
말라기-라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한 예언서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
이후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던 말라기의
말씀선포 이후, 
침례 요한의 출현까지 약 400년의 동안을
보통 신구약 중간기라고 부릅니다. 
신구약 중간기에는 성경이
쓰여지지 않았고, 
또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말라기와
침례 요한의
출현 사이의 시대를
성경의 암흑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말라기-란 이름은 ‘나의 사자’
 (메신저)란 뜻이 습니다.


​스룹바벨 이후,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번영과 부흥을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또한 학개의 스가랴 선지자들이
이를 함께 도왔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고, 
수도 예루살렘 도시가 정비되어, 
이제는 어느 정도 나라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고
점차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다져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전과 도시가
재건되고 회복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은
자신들의 생각한 만큼
풍요롭거나 번영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건축하고 난 후, 
나태함에 빠집니다. 
백성들은 성전이 재건되고, 
수도가 정비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내려, 
이스라엘 민족을 세계의 중심으로
사용하여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들의
생활의 여건은 생각한 것만큼
좋아지지 않았고, 
여전히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한 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점차 참된 신앙을 잃어버리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시 영적인 각성과 도덕적인
각성을 촉구하게 되었고,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말라기 선지서의 핵심 주제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라, 
즉 다시 신앙을 회복하라’는
회개의 말씀이었습니다.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장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저 이방인들 보다,
 자신들의 원수보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더 잘 살아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자신들의 생활을 보면
믿지 않은 이방민족보다
초라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은
외적인 축복과 풍성한 물질이었습니다. 
번영과 성공이 있어야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축복과 번영이 없다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것이고, 
자신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늘 본문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시작부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절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경고를 하십니다.
 ‘너희에게 경고한다. 
맨날 원망과 불평만 하고, 
받은 복에 감사하지 못한
너희에게 내가 경고한다. 
영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너희에게 경고한다.’

3절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이 말은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랑하시고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셨지만, 
하나님 백성들의 원수가 된
민족들은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라는
것입니다.

 4절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라 하셨습니다.

당장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불평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이 자리에 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 
나를 인생의 무수한 위기
가운데서 지켜주셨던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여러분 기억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과
이방백성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징계후에
회복과 용서가 보장 되지만, 
이방 백성들에게는 징계후, 
더 이상의 용서와 회복이
없음을 알려주심으로, 
하나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알려주시고
증명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여전히 부인하고 또 거절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우리들은 흔히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행복한 순간에 정작
당사자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다가, 
세월이 지난 뒤에야, 
그 때 그 시절이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아쉬워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 생활 속에서도
그와 같은 일들이 생겨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잘못들

첫 번째로, 하나님을 향한
공경함을 잃어버림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했습니다.

6절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께서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평가는 
'제사장이라는 사람들이
가정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사장은 당시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이라면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잘 인도하여야 하며, 
또 백성들 앞에서 참된 경건과
거룩함을
몸소 보일 수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런데, 이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백성들을 타락으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모두 다 제사장이란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교리를 가지고 '만인제사장'설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들은 모두 다
이 백성 앞에서 종교지도자요, 
종교적 리더인 셈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타락하고, 
성도들이 타락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먼저 바로 서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아간다면
우리 나라와 민족이
바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잃어버림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했습니다.

​6절 말씀의 후반부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7절과 8절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하나님 앞에 받쳐지는
모든 예물은 흠이 없고
깨끗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더러운 떡을 드리고, 
눈먼 가축으로 제물을 삼았던 것은
이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고
제물 드림이 아까웠다는 이야기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시며,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만왕의 왕 되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두려워할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그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면서, 
또한 주인이 되십니다. 
그런 주인을
두려워 하지않는 종이 있다면, 
그것은 지극히 무례하고
악한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두려움과 존경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

​9절,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의 주권자인 총독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당시 이스라엘 민족을 주관하고
다스리고 있었고, 
그에게 잘못 보이면, 큰 피해가
여러 모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무시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했습니다.

​우리들은 흔히 예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들이 드리는
어떤 예배라도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종류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실 뿐 아니라, 
오히려 분노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을 항상 찬양하게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를
굉장히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렇게나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찬양한다고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받으시고, 
우리가 헌금 드린다고
무조건 기뻐 받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의 없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7절 8절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내 단에 드렸고, 
눈 먼 희생을 드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이
드려져 야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가장 귀한
정성과 사랑과 관심이 모여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희생제물보다 받치는 이유, 
그것은 그들이 마음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12절과 13절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로 제사를 드리는
백성들과 제사장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거룩성과
경건성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제사 드리는 일에
대하여 번거롭다고 여겼습니다. 
그 뜻은 지겹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 1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결국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은
이스라엘 대신 이방인들에게
오히려 임하게 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충만하게 임하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취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이요
하나님은 아무거나 드려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너무
잘못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죠.  
속 마음은 전혀 아니면서, 
겉으론 그럴듯하게 마치
경건하게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하는
위선적인 예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분노하고 계신 것입니다.

​ 결론)

그래서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신령과 진정(영과 진리로)로
예배를 드릴 자들을 찾고
계시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진정으로 높이고, 
온전한 두려움과 사랑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이들의 예배를
하나님께 서는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큰 복을 주십니다.

출처 : 081418 안익선 목사/참고: 섬김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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