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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 이태리 로마에서 가족여행

love123 2022. 6. 6. 00:35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돔(dome)은 하느님의 영원성을 상징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가 설계한 거대한 반구형의 지붕인 돔(dome)은 성당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베드로 대성당 위에 떠오르는 태양 같은 이 돔은 우주나 그것을 만드신 하느님의 영원성을 상징한다. 거대한 돔의 직경은 42m에 이르고, 내부는 아름다운 성화로 장식했다.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은 바로크 시대의 거장 베르니니(Bernini, 1598~1680)가 타원형으로 만들었다. 주변은 열주로 장식했다. 수많은 열주는 천국의 백성이 방문객들을 줄지어 서서 환영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열주 위에는 높이 3.6m인 140명의 성인 입상이 있다. 이 지상의 교회는 성인들과 선한 사람들로 가득 찬 천상의 교회와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진출처: 카톨릭신문 2017-02-05 [제3030호, 12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지붕 위에서 바라본 광장>

 

온라인 예약에 4유로를 추가하면 줄을 서지 않고 입장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최초의 베드로 성당은 90년경 교황 아나글레토(St. Anacletus, 79~90/92년 재위)가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던 바티칸 언덕에 세운 것이었다. 그 후 콘스탄틴 대제가 313년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바티칸 언덕에 큰 규모의 바실리카식 성당을 건축해 360년경에 완성했다. 그로부터 1000년 이상 사용되던 이 성당은 낡아 붕괴의 위험에 놓였다.

타원형 광장의 한가운데는 높이 26m의 거대한 돌기둥인 오벨리스크(obelisk)가 서 있다. 로마인들은 그것을 이집트에서 가져와 원형 경기장 안에 세웠는데, 그곳에서 초기 교회의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교황 식스토 5세(1585~1590년 재위)는 순교자들의 목격자 역할을 했던 이 돌기둥을 베드로 대성당 광장의 한가운데 세웠다. 오벨리스크는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의 희생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대성당 지붕 위에 올라가 광장 전체를 내려다보면 그 모양이 커다란 열쇠 같다. 광장의 형상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준 천국의 열쇠를 연상시킨다(마태 16,13-20 참조). 또한 자모이신 교회가 양팔을 벌려 신자뿐 아니라 만백성을 품어 주는 모습처럼 보인다. 대성당 광장에 들어서면 마치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긴 것 같은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테라스에서 전망은 산 피에트로의 돔

바티칸 정원: 로마의 비밀 정원

바티칸 정원은?

바티칸 정원 또는 바티칸 시티 정원은 23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녹지 공간입니다.

정원은 바티칸 시국 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정원은 가톨릭 교회와 교황이 소유하고 있으며

조각품, 중세 기념물, , 분수, 나무, , 희귀 식물 및 놀라운 조경을 포함합니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 내에서 "녹색 심장"이라고 불립니다.

라오콘: 

큰 뱀에 감겨 고뇌하는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의 모습을 본다.

오른쪽 아들은 이미 죽었고 왼쪽 아들은 아버지를 쳐다보는 모습이다. 


사제 라오콘은 아폴로를 섬기는 트로이의 제사장으로 그리스 군의 계략을 간파하고

그리스 군이 남기고 간 목마를 트로이성 안에 끌어들이면 트로이 성은 함락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자 그리스 편을 들었던 바다의신 넵튠(포세이돈)이 비밀을 누설한 것에 화가 나 두 마리의 큰 뱀을 보내 그와 그의 두 아들을 칭칭 감아  물려 죽게 한다. 큰 뱀에 감겨 고뇌하는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의 모습을 본다. 오른쪽 아들은 이미 죽었고 왼쪽 아들은 아버지를 쳐다보는 모습이다. 그리스 후기 헬레니즘 시대의 대리석으로 된 걸작이다.  

벨베데레의 아폴로

기원전 4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미와 조화, 균형감을 갖춘 고전미의 표준으로 여겨집니다.

바티칸 박물관을 대표하는 조각상인 <벨베데레의 토르소(Belvedere Torso)>이다. 기원전 3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로마시대에 모방해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교황 클레멘스 7세가 벨베데레의 뜰로 옮겼다고 한다. 교황인 없어진 팔과 다리 등을 복원해라고 했지만, 대부분 작가 즐이 거절했다고 한다. 인간의 육체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걸작으로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후대의 많은 조각가들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불어넣었던 작품이다. <출처:Culture & History Traveling>

 

안티누스 조각상

안티누스(Antinous, 11111271301030)는 비티니아 출신의 고대 그리스인 청년이며, 고대 로마의 황제인 하드리아누스의 총애를 받았다. 130년 이집트 지역의 나일 강에서 익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의 정황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사후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신격화되어 수많은 예술 작품에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집트 소아시아에 그의 신앙이 퍼지게 되었다.

바티칸 박물관 원형의 방에 있는 네로 황제의 욕조와 황금색 빛을 발하는 헤라클레스 상의 모습

원형의 방(Sala Rontonda)

복도를 전시공간으로 꾸며 놓은 뮤즈의 방을 지나면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판테온을 축소한 형태로 만들어진 원형의 방(Sala Rontonda)’으로 들어선다. 전시공간은 판테온을 축소한 형태로 벽면에 감실과 비슷한 형태로 조각상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이런 전시형태는 판테온 내부의 공간 구성과 비슷하다. 원형으로 생긴 전시실 중앙에는 큰 수조(Basin)가 놓여 있고, 바닥은 그리스.로마시대에 등장하는 주요 장면들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꾸며놓고 있다. 헬레니즘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청동으로 만든 헤라클레스, 로마 최고의 여신으로 그리스 신화의 헤라와 동일시되는 주노(Juno)를 비롯하여 신들의 석상과 로마시대 역대 황제들을 비롯한 실존인물들의 흉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출처:Culture & History Traveling

 

성 베드로 성당에서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벽화가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가는 박물관.

Galleria degli Arazzi / 태피스트리의 방

태피스트리란

'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또는 그런 직물을 제작하는 기술'

 "바티칸 미술관 콘스탄틴 사이의 천장 그림"

중앙에 그려진 부서진 우상 조각상 뒤로 십자가가 세워진 모습을 주제로 하며
그리스도교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바티칸 대성당 내부

베드로 사도 좌상은 13세기 피렌체 출신의 조각가 아르놀트 디 캄비오의 작품

베드로의 의자, 성 베드로 대성당

성 베드로 대성전

성베드로의 시신이 대성전의 제대 아래에 묻혀 있는 까닭에 옛날부터 교황이 선종하면 그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다. 대성전은 4세기 이래 이 장소에 있었다. 대성전의 건설은 1506418일에 시작되어 1626년에 완료되었다.

교황의 집무실이 있는 바티칸 사도 궁 전경

 

 

트레비 분수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 

1732년 공모저에 당선된 니콜라 살비의 작품으로 1762년에 완성되었다.

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해 바로크 양식으로 조각된 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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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년전 로마 마차 경주장, (2016년 3월 11일 촬영) 영화 벤허 마차 경주장은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진실의 입  입구에서 줄 서서 기다리던 곳

사진:구글&nbsp;영화 "로마의 휴일" 스틸컷

 

포룸 로마눔(라틴어: Forum Romanum)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지이며, 이탈리아어로는 포로 로마노(이탈리아어: Foro Romano)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로마 구도심 한가운데 있다. 주요 정부 기관 건물들이 직사각형 모양의 광장을 감싼 형태다. 고대 로마 시기에 이곳을 포룸 마그눔(Forum Magnum)이나 포룸(Forum)이라고 불렀다.

중앙의 8개의 기둥만 남은 데가 사투르누스 신전, 그 왼쪽이 셉티무스 세베루스의 개선문이다. 바로 뒤의 주황색 지붕 건물이 카이사르가 최후를 맞은 원로원이다.

가운데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Arch of Septimius Severus)와 그 뒤에 초기 중세 교회인 산티 루카 에 마르티나(Santi Luca e Martina)가 보인다.

 

조국의 제단 비토리아노 에마뉴엘레 2세 기념관

조국의 거대한 흰색 대리석 제단은 통일 이탈리아의 첫 번째 왕인 Victor Emmanuel II를 기념합니다. 또한 로마에서 가장 크고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는 리소 르지 멘토 박물관이 있으며, 무명용사의 무덤 

로마 베네치아 궁전

 Palazzo Venezia가 로마 궁전의 지골과 구별되는 점은 르네상스 양식 요소를 보여주는 궁전 같은 건축물의 가장 초기 사례라는 점입니다. 파르네세 궁전이 로마 전성기 르네상스의 건축학적 하이라이트라면 베네치아 궁전은 로마 초기 르네상스의 걸출한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미켈란젤로 의해 조각 하는 모세의 대리석 동상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대성당에서 산 피에트로에 있는 미켈란젤로 모세의 동상.

 

율리우스 2세 무덤의 조각품들

권력을 잡은 다른 많은 르네상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율리우스 2세는 일생 동안 자신의 영묘를 만들 것을 명령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임무를 맡아 약 40년 동안 작업했습니다.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원래 프로젝트에 따르면 40개의 조각품이 묘비의 왕관을 장식해야 했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을 얻기 위해 카라라 채석장에 갔지만 율리우스 2세는 다른 것을 선호했고 콘스탄틴 대성당을 재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몇 년 후 율리우스 2세가 사망할 때까지 작업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교황은 1513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 프로젝트는 크게 축소되고 단축되고 다시 완료되어 1542년 6판에서 승인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따르면 무덤은 7개의 조각으로 장식되어야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중 3개만 만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내 라헬과 레아, 그리고 유대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한 바로 그 선지자 모세의 조각상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전체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주인 자신은 그의 동상 중 하나가 무덤에 아름다움과 위엄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미켈란젤로가 아랫입술 아래에 Julius의 얼굴 이미지를 "숨겼다"라고 널리 믿어집니다. <출처:구글 검색>

베드로가 예루살렘과 로마의 옥에 갇혔을 때 묶였던 쇠사슬

막센티우스와 콘스탄티누스 대성전 의 유적. 건물의 북쪽 통로만 남아 있습니다.

고대 로마 건축에서 바실리카는 일반적으로 도시의 포럼 옆에 지어진 여러 기능을 갖춘 대규모 공공건물입니다

 

라보나 광장 분수

라보나 광장 분수

보로미니 아그네스 성당. 아그네스 성당의 정식 이름은 산타 네제 인 아고네란 이름으로, '인 아고네'는 경기장이란 뜻

판테온 (로마)125년경 만들어진 모든 로마 신들에게 봉헌된 신전으로, 현재는 기독교 교회가 쓰고 있다.

판테온 신전 - 고대 로마시대 건축물인 판테온 신전은 건축 과학의 시발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엄청나게 과학적이다. 2000년 전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광학적 설계와 열적 대류에 대한 설계 및 돔형 구조의 응력 분포도 완벽히 계산되어 있다. 판테온 신전 맨 위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데 그 구멍 하나가 판테온 내부 전체를 밝히는 광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제사에서 발생하는 연기를 배출하는 환기구 역할을 한다. 더욱 신기한 점은 건물 내 열적 대류에 의해 뿜어지는 공기가 그 구멍으로 빗물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또한 44m에 달하는 크기에도 불구하고 기둥 하나 없이 돔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현대 건축기술로도 만들기 힘든 고난도의 역학적 건물이다. <출처:Pinterest>

판테온에 있는 라파엘로의 무덤

1520 37세의 나이로 요절한 르네상스의 천재 예술가 라파엘로의 묘소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신 성모 마리아상

돔에 있는 구멍 지름이 9m인 판테온의 내부 천장은 4,535t이나 되는데, 돔을 받쳐주는 기둥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아치 공법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벽이 그 무게를 지탱하고 있을 뿐이다. 격자무늬 모양의 움푹 들어간 돔의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는 돔의 조형미도 살리고 하중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다.

로마 판테온에 숨겨진 성모 마리아

로마 판테온은 거의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고대 로마의 유일한 이교도 사원입니다. 그것은 항상 종교적인 사원이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테온 (신)은 모든 신에게 바쳐진 사원이었습니다.

실제로 마돈나의 오른손은 아이의 무릎에 닿아 길과 진리와 생명을 나타냅니다. 이 제스처는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중재를 강조합니다. 구원을 주는 것은 바로 손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아들을 보지 않고 "길"을 가리키는 "부르시는" 구경꾼을 바라보십니다.

이 이미지는 고대 로마인들뿐만 아니라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의 순교자들이 소유한 수백 개의 유물이 있는 교회를 방문하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높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 위대한 숭배는 수세기 동안 이미지를 보존하기 위해 테이블에 다양한 페인트 층으로 인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금박을 입힌 은색 덮개로 장식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침묵 속에서 당신이 길을 보여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판테온은 로마의 모든 신을 위하여 지은 범신전 또는 만신전이다. 판테온 신전의 ‘판(pan)’ ‘모든’이고, ‘테온(theon)’ ‘신(神)을 뜻한단다. , 로마 사람들은 지상의 모든 것을 신으로 모셨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다. 판테온은 BC 27년 처음 지었으나 여러 번의 화재로 전소되었고, 서기 110년경 완전히 새로 지었다. 로마는 정복한 광활한 지역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해주면서 흡수 통합하였기에 수많은 신을 인정하였고 함께 판테온에 모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런 전통에 따르지 않았다. <출처:안희두 로마 여행기 1>

판테온의 구멍 뚫린 천장 바닥 부분 44 각형 대리석 중앙 타원 안에 4개의 배수 구멍이 보인다.

 

건물 천장에 구멍이 뚫린 자리를 오쿨루스(Oculus 거대한 눈)라 부르는데 태양을 상징한다. 지름이 9m인 구멍은 자연광이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이다. 벽면에 창문이 없어도 어둡지 않다. 오히려 천장의 구멍으로부터 들어오는 자연광은 판테온 내부를 골고루 밝히며 신전의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판테온 신전 뒤편 미네르바 광장(Piazza della Minerva)에 높이 5.5m의 코끼리 오벨리스크는 로마에 있는 12개의 오벨리스크 가운데 가장 작다.

판테온은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옛 로마 신전으로, 7세기 들어 가톨릭 성당으로 활용되면서 지금까지 전한다. 판테온은 그리스어 ‘판테 이온(Πάνθειον)’‘판테 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뒷면 좌측에서 본 판테온

 로마 제국의 유적 중 가장 최근에 지어진 것 중의 하나인 이 웅장한 개선문은 여러 정교한 동상과 화려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다.

출처:중도일보 [도시樂] 로마제국 걸작 중의 걸작 '콜로세움' 내용이 좋아서 그대로 옮김

‘평민’ 출신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네로의 ‘황금 궁전’ 위에 상징처럼 건립 검투사 경기서 해상전투까지… ‘아치’ 형 설계로 5만 관중 30분이면 빠져나가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 위에 지어졌고, 평민 출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정치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대 로마제국이라지만 완공하기까지는 엄청난 재정이 필요했는데요, 티투스 개선문의 부조를 보면 이 거대 원형경기장이 전리품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죠.

콜로세움은 서기 70년경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을 해 80년 그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 때 완성했습니다. ​비공식 이름이었던 '콜로세움‘은 경기장 근처 네로 황제의 거대 청동상(Colossus Neronis)과 명칭이 혼동되었다는 설과 '거대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콜로 살레'(Colossale)와 어원이 같다는 설이 있는데요, 중세에는 그 자체가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콜로세움은 당시 최첨단 건축기법이 동원됐는데요, 대표적으로 벽돌과 콘크리트의 사용입니다. 시멘트는 석회와 물 그리고 포추오리(이탈리아 지역)에서 발견된 잿더미인 화산재를 사용해 강한 접착 성분을 만들어냈습니다. ​콜로세움에 사용한 벽돌만 무려 100만 개에 달했습니다. 벽돌과 벽돌을 쌓아 올린 두 개의 벽안에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거대하고도 강한 구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이 완벽한 콜로세움도 관광을 하는데 방해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햇빛이었죠. 물론 당시엔 햇빛 가리개용 천막인 '벨라 리움'이 있어 40도의 무더위 속에서도 시원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1000명이 줄을 당겨 천막을 개폐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영화 '글레디 에이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콘스탄틴 개선문

유태인은 지나갈 수 없는 티투스 아치

티투스의 아치는 황제 티투스를 경의 하는 표시로, 그리고 티투스의 군대가 유태인들을 멸망시켰을 때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70년에 건축된 아치입니다.

따라서 티투스 황제는 유태인의 신전의 파괴자로서, 그리고 모든 유태인들의 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유태인 대학살을 자행했던 도살자로서 모든 유태인들의 증오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또한 그 아치 아래로 지나가는 유태인들을 처벌할 의도로 최고 종교회의에서는 '하램'이라는 법 조항과 이에 따른 제재를 규정해 놓았기 때문에, 어떤 유태인도 그 아치 아래로는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그 아치를 이용하지 않고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콜로세움에서 수도로 연결된 그 아치와 파라틴 사이에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베니스, 피렌체, 쏘렌토, 카프리섬, 나폴리, 로마 등 긴 시간 여행을 마치고

영국 런던으로 가기 위해 공항 내 기차를 타고...

런던에서 봬요

글 출처: 구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