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해외여행

201008 서유럽 가족여행 프랑스 파리편

love123 2022. 5. 22. 21:27

 

2010년 8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도

떠나야만 했던 뜨거운 여름날

우리 4인 가족 서유럽 여행

사실은 고급형으로 서유럽 여행 상품을 선택하여

예약을 하고 현금과 카드로 완불을 한 후

다음 날 **여행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

예약이 되지 않아

전화를 걸어 보아도 우리 이름은 없었다.

며칠 남지 않은 시간에 확인하여도 우리 이름은 없었고

추후 국내 여행사 큰 사건으로 매스컴에서

뉴스가 대대적으로 나오고...

 

가족들이 실망할까 봐

다시 다른 회사로 예약을 하여

여행을 진행하고

드디어 우리는 인천공항을 떠나

파리 드골 공항으로 도착합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더워 폭염으로 고생했는데

파리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나오려니 

날씨가 선선합니다

 

맨 처음 찾은 곳

루브르 박물관

세계 최고의 박물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를

비롯한 30만 점의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루브르는 원래 프랑스 왕가의 궁전이었습니다.

두 개의 커다란 건물과 아주 넓은 정원,

225개나 되는 전시실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왕가가 베르사유 궁전으로 옮겨간 후

왕실의 미술품 보관소로 남은 것이

박물관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필리스의 장례비

1862년경 그리스의 타소스 섬에서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발견되었습니다

 지역 대리석으로 조각된 이 탑은 죽은 자를 나타냅니다.

그의 이름은 상단 밴드에 새겨져 있습니다:

필리스, 클레오 메데스의 딸

 파르테논 신전의 현대 인 이 비석은

아테네 고전주의가 그리스 세계의 다른 지역에

미친 영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8개의 지역 구분

1. 동양지역 구분의 동방관

2. 이집트관

3.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관

4. 이집트 문화관

5. 조각품 전시관

6. 예술관 회화 작품관

7. 그래픽 예술관

8. RICHELIE, SULLY, DENON의 세계의 주 전시관으로 구분됩니다

 

박물관의 또 다른 매력으로 

이 그리스 대리석 동상은 Denon과 Sully 블록 사이의

산책로에 특징으로 표시됩니다. 

Denon 건물의 1층에는

고대 로마와 에트루리아의 작품과 르네상스부터 19세기까지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안토니오 카노바의 큐피드의 키스로

소생한 프시케의 대리석 조각상이 있습니다. 

더 유명한 것은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 동상입니다.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상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조각상 가운데 하나로,

기원전 220년에서 19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를 관장하는 여신인 니케를 묘사한

대리석상으로, 길이는 328cm이며,

머리와 양팔이 잘린 채로 남아있다.

 

로마 최대의 여신 그리고 질투의 화신 : 헤라

헤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여신으로

주신 제우스의 누이이자 아내이다.

그리스어로는 '헤라' 로마 어로는 '주노'라고 부른다.

매서운 질투로 무장한 헤라 여신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여인상이다.

멀리서

사모트라케의 니케 상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830~ 18251229)

신고전주의 양식에 속하는 유력한 프랑스 화가로,

이 시대의 탁월한 화가로 평가받는 중이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이뤄진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모습.

다비드의 1805년 작품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

신고전주의 화가로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은 화가입니다.

신고전주의 화가는 고대 그리스,

로마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고

아래 작품은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다룬

테르모필레 전투의 레오니다스(1813)

 

큐피드와 프시케

로마 신화 속에 사랑의 신인 큐피드(그리스 신 화의 에로스),

늘 발가벗고 다니는 당돌한 꼬마 신이다.

불그스레한 볼에 오동통한 배,

포동포동한 짧은 다리의 이 녀석은

미의 여신인 비너스(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왼쪽

캐롤린 리비에르의 초상, 앵그르, 1806년, 신고전주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장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오이디푸스

한 남성이 바위산 협곡 사이에서 누군가와 심각한 대화 중이다.

다부진 체격과 예리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암시한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상대방은

봉긋한 가슴이 있는 걸 보아 여성인 듯하나,

사자의 다리와 독수리의 날개를 가졌다.

그 아래엔 해골과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그 모습에 기겁해 달아나는 이도 보인다.

 살롱 드농(Salon Denon)’1860년대

총 네 장면으로 구성된 천장화는

각각 4명의 프랑스 대표 군주를 나타냅니다.

그림 왼쪽마다 새겨진 이니셜이 누구를 그렸는지 알려줍니다.

SL은 루이 9(Saint-Louis)입니다.

그는 13세기 십자군 원정을 통해 가져온

성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생트 샤펠 성당을

건립해 프랑스식 건축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림 속 왕의 뒤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파리 생트 샤펠 성당입니다.

그 옆은 태양왕 루이 14(Louis XIV)입니다. 

그의 명령으로 지은 군사 병원, 베르사유 궁전을

연상시키는 건물도 등장합니다. 

절대 왕권의 상징 루이 14세는

자신의 힘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수많은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마지막은 나폴레옹 1(Napoléon I)

카루젤 개선문과 함께 나타납니다. 

왕의 혈통이 아닌 나폴레옹은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많은 예술가를 거느리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게 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박물관 안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 오른쪽은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를

이끈 프랑수아 1(François I)입니다. 

다빈치를 프랑스로 데려왔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천장화에 등장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라파엘로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 대표작들과

그가 세운 퐁텐블로 궁이 보입니다.

파올로 베로네세는 이탈리아 화가다.

이 작품은 화가 특유의 거침없는

재능을 투영해 신앙적 엄숙함보다는

세속적 의식인 피로연을 즐기는,

인물들의 즐겁고 들뜬 베네치아 취향 정경을

좌우 대칭 구도로 그렸다.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의 제자들,

각지에서 모여든

결혼 축하객, 악사, 시종과 광대 등

수많은 인물이 어울려

흥겨운 잔치가 무르익어 간다.

베로네세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132명이 등장하는

압도적인 그림에 이적의 장면을 표현했다.

마치 연극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예수님은 후광이 비취는

작품 중심 테이블 한가운데 앉아 있고,

양편으로 마리아와 제자들을 배치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수수한 옷차림인 데 반해,

축하객은 전통 복장을 하거나 베네치아 상류층이

즐겨 입는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실제 유럽 왕들과

귀족들을 모델로 삼았다.

잔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는 맨 왼쪽에 앉아

시종에게 포도주잔을 받고 있다.

잔치 중에 포도주가 바닥나자

예수님은 항아리에 채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잔치 주관자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

그림 오른쪽 하인이 따르는 물이

포도주로 변해 주전자에서 콸콸 쏟아진다.

서서 그 맛을 시음하는 잔치 주관자는

베로네세의 동생 ‘베네데토’다.

그도 화가였는데 재능은 형에 미치지 못했다.

악사 넷이 예수님 앞에서 연주하고 있다.

베네치아파 화가를 모델로 그렸다.

흰옷을 입고 비올라를 연주하는

악사가 바로 베로네세다.

티치아노는 콘트라베이스,

바사노(Jacopo Bassano,1510~1592)는

플루트, 틴토레토(Tintoretto, 1519~1594)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잔치를 흥겹게 끌어간다.


이 악단이 둘러앉은 테이블 위에는

모래시계가 놓여 있다.

이것은 잔치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과

물질적 쾌락은 순간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그림을 통해 당시 유행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호화로운 옷차림을 한 인물들,

화려하게 수놓은 테이블보와

갖가지 식기와 악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난 이 작품은 언제 끝날지 모르게

잔치의 흥겨움 속으로 빠져드는 16세기 풍

호사스러운 향연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사진:구글

그 유명한 모나리자 원본

이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물러 나 주기를

기다리는 것

유명세에 비하면 원본은 아주 작아 조금은 실망이 되기도 한다고

 

라파엘

La Belle Jardinière로 알려진

작은 성 요한 세례자와 함께 있는 동정녀와 아기

 

안드레아 솔라 리오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애가

아모르의 키스로 되살아나는 푸슈케.

루브르 박물관 주변에서

루이 14 세 동상 

로마의 개선문을 표방한

카루젤 개선문

카루셀 개선문의 높이는 19m였다.

그러니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격파한 뒤

의기양양해진 나폴레옹의 성에 차지 않았다.

태양왕 루이 14세를 능가하고 싶었던 그가 아닌가?

그래서 샹젤리제 끝에 이 승전 기념물을 다시 세우도록 명령한 거였다.

이번엔 로마제국 최초의 개선문인 티토 개선문(Arco di Tito)을 모방해서.

시작은 1806년이고 완공은 루이필리프 왕 때인 1836년이었다.

파리 1구 거리

파리 1구는 프랑스 수도의 20개 구(행정 구역) 중 하나

센 강(River Seine)의 오른쪽 제방에 위치

시테 섬(Ile de la Cité)의 서쪽 끝도 포함

arrondissement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입니다.

Île de la Cité 는 기원전 52년에 로마인들에게 정복된

Lutetia 시의 심장이었으며,

오른쪽 은행의 일부(Les Halles 포함)는

초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세. 도시의 아롱 디스 망(arrondissements) 중

가장 인구가 적고

면적이 가장 작은 구역 중 하나이며,

그중 상당 부분이 루브르 박물관과

튈르리 정원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출처:위키백과

 

개선문

고대 로마시대에 비약적으로 발달한 방식으로 로마네스크

특히 고딕 건축에서는 아치 원리를 이용하여 높고

큰 석조 천정을 만드는 것이 건축의 기본 주제였다.

아치는 두 개의 큰 돌을 비스듬히 기대어 만든

초기 형태부터 변형, 발전되었는데 미학적으로는 아름다우나

구조적으로는 정상 부분이 약하여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는 데 문제가 있었던 방식이다.

출처 : 에듀인 사이드(http://www.eduinside.kr)

 

베르사유 문

베르사유 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궁전,

바로크 건축양식의 진수, 화려함의 대명사가

바로 베르사유 궁전입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자, 태양왕이란 별명으로

72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했던 루이 14세가

자신의 절대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극도로 화려한 건축물입니다.

베르사유 정원

프랑스의 칼 같은 대칭 모습을 잘 표현해주는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모습

철저한 좌우 대칭에 하나의 흐트러짐 없이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정원을 장식하

궁전에 들어오는 입구의 가로수들은

사각으로 나무들을 정리

 

에펠탑에 오르다

 

 

에펠탑은 프랑스 파리의 상징적 건축물로,

1889년에 프랑스혁명 100주년을100 맞이하여

파리 만국 박람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박람회를 상징할만한 기념물로 에펠탑을 건축하였다

에펠 탐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

사진이 흐리지만...

 

센 강 야경 투어

 

 

몽마르트르 언덕에 가기 위해

사크레 쾨르 대성당은 파리의 사랑받는 랜드 마크 중 하나

새하얀 트래버틴 대리석으로 지은 조화로운 건축물로,

파리에서 가장 높은 몽마르트르 언덕의 꼭대기에 서 있다.

출처 : 특급뉴스(http://www.expressnews.co.kr)

 

팔찌나 액세서리를 팔며 유인하는 

집시들이 너무 많은 곳

무서운 곳

소매치기 조심조심

 

파리 시내 전경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 전경

장 마레 광장

나는 멀리서 사진을 찍는데

우리를 향해

"this is my job"

우리 가족은 모두 돈을 내고 당당하게

사진 한 장을 찍는다

목재 패널, 환상적인 분위기,

음악, 놀라운 정원, 바 및 외부 테라스는

모두이 보석을 방문하기에 좋은 곳으로 만듭니다.

몽마르트르 중심부에 있기 때문에 바쁘기 때문에

저녁에 방문하는 경우 예약하는 것이 좋습니다.

라이브 음악: 가수-피아니스트와 카베 레 방의 아코디언을 원합니다. 

와인 바와 "펍"이 있어 다양한 취향과 예산에 적합합니다. 

내부는 외부만큼이나 매력적입니다.

이 지역의 대부분의 장소에서 모든 "아티스트 및 음악가 또는

유명 작가"가 여기에서 식사하거나

술을 마셨다고 주장합니다. <출처:트립 바이저>

몽마르트르 언덕의 골목 상가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또 걸어요

파리 국립 오페라단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페라단으로,

프랑스 문화부에 의해 직접 운영되고 있다.

1669년 루이 14세에 의해 '왕립음악원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으며,

프랑스혁명 이후 '공화국 예술 극단으로 개편되는 등

여러 차례의 조직, 구성 및 명칭 변경을 거쳐 1994년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1875년에 완공되었으며 세계 4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를 본거지로 했었으나,

1989년 현대식 극장인 바스티유 오페라가 완공된 이후

오페라 작품은 주로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발레 작품은 주로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상연하고 있다.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정명훈이

이 오페라단의 음악 감독으로 활동한 바 있다.

<출처:위키백과>

 

시내를 지나며

 

노트르담 성당

불타기 전

노트르담 성당 앞

노트르담 대성당 문 장식 - 프랑스 혁명기 반달리즘과 비올레 르 뒤크 역작

문의 장식을 보면 우선 가운데 문은 흔히

최후 심판의 문(portail du jugement)이라고 불린다.

오른쪽 문인 성 안느의 문(portail Sainte-Anne),

왼쪽 문인 마리아의 문(portail de la Vierge) 보다 더 크다.

최후 심판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문의 박공 부분에

마태복음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박공 밑에는 두 개의 상인방이 있다.

상인방에도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아래쪽 상인방에는 무덤 속에서 부활한 죽은 자들이 그려져 있다.

이들은 속세에서 죽은 이후 최후의 심판을 받으러 가기 전 단계이다.

그 위에는 대천사 미카엘이

그들 영혼의 중량을 재고 있는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장식은 아랫단 장식과 스토리상으로 연결된다.

이윽고 오른쪽과 왼쪽으로 장면이 나뉘는데 왼쪽에는

천국이 그려져 있으며

최후의 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자들이 묘사되어 있다.

반면 오른쪽에는 죄인들이 악마에게

. 이끌려 지옥으로 끌려가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Portail Sainte-Anne의 트루모는
436년에서 438년 사이의 주교인 Saint-Marcel의 동상이 있습니다.
클뤼니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복제품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캐노피 아래에 놓여 있으며
그 위에 낮은 상인방의 중앙 그룹이 놓여 있습니다. 
오른손은 축도를 설명하지만 왼손은 막대기를 잡고
날개 달린 괴물의 목구멍에 던집니다. 
아래에는 6세기 말에 Venance Fortunat가 설명한 전설에 따르면
부유하고 음란한 여자의 시체가 있습니다. 
그의 무덤은 매일 저녁 그의 유해를 먹으려고
찾아온 일종의 용에게 습격당했습니다. 
겁에 질린 이웃 마을의 주민들은 마르셀에게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Saint Marcel은
파리 사람들에게 높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18세기까지 그 풍부하고 무거운 유물은 일 년에 여러 번
상당한 군중의 한가운데서 행렬로 운반되었습니다.

2019.15일(현지시간)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파리 노트르담 성당은

가장 위대한 고딕 양식의 건물로 서양의 건축물 중에서도

독보적인 보석으로 여겨졌던 것이어서 프랑스 시민들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1163년 모리스 드 설리 파리 주교가

유럽의 정치와 경제, 지식의 중심지라는 위상을 알리기 위해

착공돼 100년 이상 걸려 완공된 노트르담 성당은

해마다 120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프랑스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다.

성모 마리아인 '우리의 여인'을 뜻하는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혁명(1789~99년) 당시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약탈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한때 포도주 저장시설로도 사용됐다가

1801년 프랑스 정부와 가톨릭교의 화해로 주인을 되찾았다.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열렸으며

그는 6년 뒤 같은 장소에서 결혼식도 올렸다.

노트르담 성당은 1831년 빅토르 위고가 이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가 출판되면서 새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20년 복원 작업을 통해 첨탑과 중앙 구조물 외벽에 덧댄

아치형 지지구조 인 '플라잉 버트레스(버팀 도리)'가 다시 살아났다.

<출처:파이낸셜뉴스>

프랑스인들은 대부분 너무 착하다고

가이드님이 말씀하십니다

생각이 나는 것은

샹드리제 거리의 상인들이 일요일에도

가게 문을 열게 해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거절을 했다고 하는데

직원들이 근무를 하게 되면 그들의 자녀들을

맡길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

유치원 학교 등이

모두 휴무라서...

그리고 거지들과 집시들이 많은 이유는 

거지들이 동정을 요구하면 그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거라고? 복을 받을 수 있는...

거지들은 더욱 당당하게 구걸을 하고...

 

동유럽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건너와 일을 하고 

집시들이 많아도 거부 하지 프랑스인들의 선함으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라고 합니다

정확한지 모르지만 제가 그때도 지금도

프랑스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국민들의 가톨릭 신앙의

기본으로 선한 국민성 때문인 듯합니다

<사진출처:위키백과>

 

여행 후 노트르담 화재 사건은 정말 충격과

안타까움이 그지없었습니다

세계 몇몇 나라들을 다녀 보았지만

프랑스는 참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자연은 신이 창조하시고

사람들은 도시를 만든다고 하는데

프랑스는 건물과 도시를 참 아름답게

마을을 예쁘게 예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스위를 향하여 기차를 타게 됩니다

포스팅 중 출처를 밝히지 않은 그림설명과 장소에 대한 글들은

구글 검색을 통하여 삽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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